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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거보드와 기계식 시계: 닮은 듯 닮지 않은 닮은 우리.

최종 수정일: 5월 7일

핑거보드와 기계식 시계… 이 두 단어를 나란히 보면, 아마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이 둘이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지?”

하지만 이 칼럼을 통해, 여러분이 두 세계에 대해 조금 더 친숙해지고, 그 공통된 가치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핑거보드와 시계를 모두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저는 이 두 분야가 공유하는 가치—잘 만들어진 제품의 가치, 각각의 아이템이 담고 있는 스토리, 그리고 그것들이 어디로 우리를 이끌 수 있는지에 대해 언젠가는 꼭 써보고 싶었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기계식 시계를 좋아하신다면, 이 글이 재미있고 공감할 수 있는 글이 되기를 바랍니다.그리고 혹시 핑거보드는 잘 모르더라도, 이 글을 통해 조금이나마 그 매력을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Noah Yang
사진: Noah Yang

먼저, 두 분야의 물리적인 특징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핑거보드 데크의 폭은 대부분 28~30mm 사이였습니다. 당시에는 이 사이즈가 거의 표준처럼 여겨졌고, 데크는 대부분 이 크기로 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특히 2010년대 중반부터 데크의 폭이 점점 더 넓어지기 시작했죠. 32mm, 33mm, 심지어 34mm까지 다양한 사이즈가 등장했고, 특히 브랜드들이 34mm 데크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는, 시장 전체에 꽤 큰 변화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34mm 데크가 가장 일반적이고 인기 있는 사이즈 중 하나가 되었죠.

재미있게도, 이런 변화는 시계의 역사와도 닮아 있습니다. 1900년대 초부터 1970년대까지 제작된 손목시계들도 대체로 작은 사이즈를 유지하고 있었죠. 당시의 시계들은 대부분 31mm, 32mm, 그리고 커봐야 35mm 정도였고, 그것이 당시에는 일반적인 기준이었습니다.

핑거보드와 손목시계 모두 시간이 흐르면서 사이즈에 대한 인식과 선호도가 바뀌었고, 그에 따라 제품의 스펙트럼도 넓어졌습니다. 단순히 ‘크기’의 변화라기보다는, 그 시대의 기술, 미학, 사용자의 감각을 반영하는 흐름이기도 합니다.

까르띠에 탱크 / 사진 출처: Hodinkee
까르띠에 탱크 / 사진 출처: Hodinkee

이런 변화는 시계 업계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1972년, 스위스의 시계 브랜드 오데마 피게(Audemars Piguet)가 로얄 오크 “점보(Royal Oak Jumbo)”를 출시하면서, 시계 크기에 대한 고정관념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계의 직경은 39mm였으며, 이는 당시 기준으로는 ‘오버사이즈’ 카테고리에 속하는 파격적인 크기였습니다.

“직경 39mm의 로얄 오크 5402는, 오데마 피게가 처음으로 시리즈로 제작한 오버사이즈 시계였다.” (Audemars Piguet Heritage Team, Le Brassus, 2022)

그 이후로 시계들은 점점 크기가 커졌고, 오늘날에는 40mm 직경이 남성용 손목시계의 평균 사이즈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핑거보드가 28mm에서 34mm로 진화했듯, 손목시계도 시대의 감각과 미적 기준, 착용자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따라 사이즈가 조정되어 왔습니다. 이 두 세계는 모두 작은 변화처럼 보이지만, 커뮤니티 내에서는 큰 의미를 가지는 흐름을 공유하고 있는 셈이죠.

오데마 피게 로얄 오크 “점보” 레퍼런스. 15202BC / 사진 출처: Hodinkee
오데마 피게 로얄 오크 “점보” 레퍼런스. 15202BC / 사진 출처: Hodinkee

디자인 측면에서도, 핑거보드와 시계는 모두 끝없는 변주가 가능한 세계입니다. 새로운 색 조합, 신소재의 도입, 독창적인 디자인은 제품 자체를 완전히 새로운 개념으로 탈바꿈시키며, 브랜드 고유의 개성과 정체성을 만들어냅니다.

핑거보드에서는 예를 들어 크루저 형태와 같은 다양한 데크 쉐입이 브랜드마다의 차별점을 보여주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일부 브랜드는 카본 섬유나 심지어 메탈 소재까지 활용하여 기능성과 미적 요소 모두를 실험합니다.

시계 브랜드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이얼 색상의 변화는 기본이고, 케이스 소재 역시 스테인리스 스틸, 골드, 티타늄, 세라믹, 플래티넘 등으로 확장되며, 하나의 모델 안에서도 수많은 버전이 등장합니다.

핑거보드 데크의 스플릿 플라이(split ply) 디자인은 시계 디자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켈레톤(skeleton) 다이얼과도 비슷한 개념으로 볼 수 있습니다. 두 요소 모두 기능을 시각화하고, 구조 자체를 미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으로, 마니아층에게 큰 매력을 주는 디테일이죠.

결국 두 분야 모두 디자인을 통해 단순한 ‘제품’을 넘어, 예술적 표현과 정체성의 수단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깊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데마 피게 로얄 오크 퍼페추얼 캘린더 ‘오픈 워크’ 블랙 세라믹 / 사진 출처: SJX Watches
오데마 피게 로얄 오크 퍼페추얼 캘린더 ‘오픈 워크’ 블랙 세라믹 / 사진 출처: SJX Watches

핑거보드 데크나 럭셔리 시계가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수작업 생산한정된 수량이라는 점입니다.

핑거보드 데크에 사용되는 얇고 정교한 무늬목, 그리고 하나의 기계식 시계를 구성하는 수천 개의 부품들—이 모든 것은 단순히 ‘재료비’ 이상의 가치를 지닙니다. 제품의 가격을 결정짓는 요소는 소재의 가격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완성시키는 시간과 기술에 있습니다.

하나하나 손으로 눌러 붙이고 갈아내며 만들어지는 데크, 수십 시간에 걸쳐 조립되고 조율되는 기계식 무브먼트—이런 장인정신이 깃든 과정은 그 자체로 브랜드의 품질을 증명하는 지표이며, 수집가와 사용자에게는 기계가 찍어낸 대량 생산품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감정적 가치를 부여합니다.

결국, 핑거보드와 시계는 모두 작지만 깊은 세계입니다. 그리고 그 세계를 구성하는 중심에는 사람의 손이, 시간이, 그리고 장인의 철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옥’ 스플릿 플라이 / 사진: Noah Yang
‘한옥’ 스플릿 플라이 / 사진: Noah Yang

하지만 ‘가격’은 판매자가 정하는 것이고, ‘가치’는 고객이 판단하는 것입니다. 헤르만 사이먼(Hermann Simon)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격은 사람들이 가치를 어떻게 나누는지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제품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우리가 인식하는 가치는 변화한다.” 《Confessions of the Pricing Man》

시계 애호가들에게 가장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는, “그 돈 주고 왜 아직도 기계식 시계를 사요? 그냥 핸드폰 보면 되잖아요?” 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오히려 단순합니다. 시계는 단순히 시간을 알려주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는 브랜드의 역사, 기술적 도전, 철학이 담겨 있고, 더 나아가 소유자의 이야기와 감정이 깃들어 있습니다. 가장 가치 있는 시계는 시장에서 가장 비싼 시계가 아니라, 당신에게 의미 있는 시계입니다.

예를 들면, 부모님이 수십 년간 착용해온 시계를 물려받은 순간, 혹은 인생의 특별한 이정표를 기념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시계를 선물한 순간. 심지어는 전쟁터에서 함께 생존한 시계까지—그 기억과 서사가 바로 진짜 가치를 만드는 것입니다.

핑거보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한 미니어처 스케이트보드가 아니라, 그 위에 쌓인 수천 번의 시도, 감정, 순간, 그리고 개인의 이야기가 담긴 오브제입니다. 결국, 가치는 숫자로 매길 수 없는 기억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죠.



핑거보드는 단순한 장난감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예술적 취향, 보드의 기능성, 트럭의 텐션 조절, 바닥과 맞닿는 휠의 감각 등, 아주 미묘한 취향과 감각을 반영하는 도구입니다.

시계 수집가들 중에서도 수천만원 시계만 모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만원 카시오 시계에서 가치를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가격이 아니라, 그 제품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입니다.

핑거보드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이 오천원 텍덱을 타든, 이십만원 커스텀 핑거보드를 타든,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제품의 가격이 당신의 열정이나 경험의 깊이를 정하는 기준은 아닙니다. 진짜 중요한 건 그 작은 보드 위에서 당신이 얼마나 몰입하고, 기쁨을 느끼는가입니다. 그 자체가 가장 소중한 가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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