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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공간, 그리고 여백의 미(美) 로 엮어낸 핑거보딩의 미학 - 승섭 인터뷰

형태만으로는 공간이 완성될 수 없습니다. 이야기가 시작되기 위해서는 빛의 고요한 존재가 필요합니다. 낮과 밤, 그림자와 정적, 그리고 은은하게 번지는 반사광—빛의 이 모든 어휘가 건축을 하나의 무대로 바꿉니다.


핑거보딩이라는 작은 세계 안에서 빛은 단순한 조명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움직임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각 프레임마다 감정을 새기며, 덧없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들을 영화적인 장면으로 변모시킵니다.


한국에는 여백의 미(美) 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그 본질은 단순한 부재에 있지 않습니다. 본질이 드러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남겨진 여백, 고요함에 있습니다. 전통 한국화, 서예, 건축 등에서 이 철학은 채워지지 않은 공간 또한 채워진 공간만큼이나 의미를 가진다는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이 글의 주인공은 독특한 흑백 미학으로 주목받는 한국의 핑거보드 크리에이터입니다. 미니멀한 공간과 빛의 섬세한 활용으로, 그는 가장 작은 움직임마저 시각적 시(詩)로 형상화합니다. 오늘 우리는 @seungseob.fb 님과 함께 공간과 빛이 교차하는 지점을 탐색하며, 그것이 단순한 이미지를 넘어 경험과 서사, 그리고 오래 남는 순간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이야기를 나눕니다.


여기서 승섭님은 빛과 공간, 그리고 여백의 미(美) 를 자신의 핑거보딩 작업 속에 어떻게 녹여내는지 들려줍니다.


(노아) 블랙 앤 화이트 톤의 영상미를 선택하게 된 계기와 그 안에 담긴 메시지가 궁금합니다.


(승섭) 핑거보드 인스타그램 계정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핑거보드의 인기가 많은 줄 몰랐습니다. 한국에서는 정말 극소수만 즐기는 취미거든요.

계정 초창기에는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했어요. 그래서 저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무기가 필요했습니다. 저는 데크를 메이플 블랭크만 고집하기 때문에 그것을 가장 멋지게 살려줄 친구들이 검정과 흰색, 그리고 빛과 명암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진: 승섭
사진: 승섭

(노아)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본질에 집중하는 승섭님의 창작 철학을 어떻게 설명하시나요?


(승섭) 저는 미니멀을 추구합니다. 이건 제 개인적인 생활 속에서도 이어지는데, 저는 아이가 두 명 있습니다. 결혼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집에서 미니멀을 추구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죠. 그래서 저는 그걸 창작에서 더 해소하는 것 같습니다.

사진: 승섭
사진: 승섭

(노아) 하나의 영상이 아이디어에서 완성되기까지, 승섭님만의 과정이나 루틴이 있으신가요?


(승섭) 저는 스케이트를 타던 사람이 아니라 기술 이름을 잘 모릅니다. 기본적인 것들을 제외하면 말이죠. 그래서 우선 다른 분들의 영상을 참고해 라인을 짭니다. 그 이후 음악을 미리 선정해 들으면서 연습을 하고, 촬영을 끝마치면 편집하고 업로드합니다. 항상 같은 과정인 것 같아요.

사진: 승섭
사진: 승섭

(노아) 핑거보드라는 작은 물건에 끌리게 된 계기와 그것이 개인적인 정체성과 어떻게 이어지나요?


(승섭) 저는 가족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결혼하고 아이들이 생기면서 제 개인적인 취미들은 전부 그만두게 되었어요. 예를 들면 농구나 컴퓨터 게임처럼 시간이 많이 필요한 것들이죠.

하지만 핑거보드는 그렇지 않아요.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고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도 있습니다. 덕분에 집 안에서 제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공간도 생겼고, 아내의 도움이 정말 컸습니다.

사진: 승섭
사진: 승섭

(노아) 한국 핑거보드 신(Scene)만의 특징이나 분위기를 해외와 비교했을 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승섭) 한국 핑거보드 씬은 정말 작습니다. 바로 옆 나라인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해도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예요. 활동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100명이 안 됩니다. 그래서 사실 가족 같은 분위기입니다. 서로 오래 알고 지내면서 편하게 형, 동생 하며 즐기고 있습니다.

사진: 승섭
사진: 승섭

(노아) 온라인 플랫폼이나 커뮤니티가 본인의 창작 활동에 어떤 영감을 주거나 영향을 미쳤나요?


(승섭) 온라인 플랫폼이나 커뮤니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부터는 마음속에 라이벌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매번 그 라이벌을 이겨내며 발전해 왔죠. 영상 속 실력이든 팔로워 숫자든, 그런 요소들이 또 하나의 재미인 것 같습니다.

사진: 승섭
사진: 승섭

(노아) 음악, 영화, 건축 등 영상 스타일에 영감을 주는 요소나 취향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승섭) 주로 음악에서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영상에서는 간결한 비트를, 사진에서는 서정적인 음악을 많이 활용하는 편이에요.

사진: 승섭
사진: 승섭

(노아) 앞으로 실험해 보고 싶은 새로운 영상 스타일이나 콘텐츠 포맷이 있나요?


(승섭) 유튜브 긴 영상을 만들어보고 싶은데, 이건 시간이 많이 필요한 작업이라 아직 도전해 보지 못했습니다.

사진: 승섭
사진: 승섭

(노아) 함께 작업해 보고 싶은 크리에이터나 브랜드가 있다면 누구인가요?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승섭) 먼저 동아시아 브랜드들과 함께해 보고 싶습니다. 최근에는 동아시아 브랜드들도 많이 성장해서 정말 멋진 브랜드가 많다고 생각해요. 같이 성장하고 싶습니다.

사진: 승섭
사진: 승섭

(노아) 개인적으로 바라보는 한국 핑거보드 문화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승섭) 한국의 브랜드 사장님들이나 커뮤니티 운영진들이 노력을 많이 해서 점점 발전하고 있지만, 지금과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습니다.

사진: 승섭
사진: 승섭

(노아) 공간의 미니멀리즘이 빛과 움직임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듯합니다. 의도적인 비움과 여백이 작품에 어떤 역할을 하나요?


(승섭) 감초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이든 영상이든 제가 보여주고 싶은 것에 시선이 집중되기를 바라거든요. 배경이 잡다하면 시선이 분산되니까요.

사진: 승섭
사진: 승섭

(노아) 앞으로 공간과 빛, 그리고 핑거보드라는 매개체를 통해 탐색하고 싶은 새로운 영역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승섭) 공간과 빛, 그리고 핑거보드라는 매개체를 통해 더 다양한 사람들과 작업해 보고 싶습니다. :)



대화가 끝을 향해 갈수록, 승섭님의 작업이 단순히 핑거보드에 관한 것도, 빛과 공간이라는 문자 그대로의 요소에 관한 것도 아님이 분명해집니다. 그것은 가장 작은 움직임에도 무게를 부여하고, 그림자와 정적마저 이야기의 일부로 만드는 하나의 언어를 창조하는 일이었습니다.


승섭님이 만들어내는 흑백의 프레임 속에는 절제와 깊이가 공존합니다. 미니멀리즘은 공허함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오히려 부재와 대비, 그리고 빛 그 자체를 통해 의미가 드러나게 만드는 의도적 선택임을 상기시킵니다.


어쩌면 그래서 승섭님의 영상은 화면이 꺼진 뒤에도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는 것일 겁니다. 그것들은 단순히 순간을 포착한 기록이 아니라, 경험을 응축한 결과물이자 공간과 빛, 그리고 덧없고도 시적인 움직임이 이루는 대화입니다. 앞으로 승섭님이 새로운 협업과 더 넓은 지평을 꿈꾸며 나아갈수록, 그가 만들어갈 무대는 점점 더 정교해지겠지만, 언제나 그 고요하고도 의도적인 빛 속에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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